오르도 화실은 정말 내가 꿈꾸던 아늑함이 있는 곳.
햇볕이 고여서 햇살 냄새가 배여있고 바닥에는 부드러운 융단이 깔려있다. 성탑 창밖에는 숲이 보이고, 밤에는 별이 가득하다. 나탄이 꾸며놓은 건 아니다. 나탄은 나중에 자기가 받은 늑대가죽을 대신 오르도 화실에 깔아줬다가 오르도가 기겁하자 다시 원래대로 바꿔놓으니까ㅋㅋ
책을 오랜만에 다시보니 새로웠다. 기분 좋았던 잠행을 나탄이 망치고서 오르도에게 어릴적 얘기를 해줬는데 오르도한테는 그게 잘못한 후 변명하는 아이같이 느껴졌다고 한다. 여기서 오르도는 진짜 다르구나를 느꼈다.
제롬의 표현을 빌리자면 이 느낌 그대로였다.
왜 그의 '그림'이어야 했고 왜 '그'의 그림이어야 했는지 알 것만 같았다.
나탄이 악몽꾼 후 오르도를 찾아가는 장면이 정말 따뜻해서 기억에 남는다. 예전에도 여기서 울었는데 이번에도 보면서 눈물맺혔다. 배경이 오르도 화실인 것도 전체적인 분위기를 떠올리는 데 한 몫한 것 같다. 붉은 머리 쓰다듬으며 온화하고 말랑말랑한 목소리로 위로해주는데, 어떻게 이런 존재가 있을 수 있을까? 나탄이 세계를 없애기 전 오르도를 만나서 다행이다. 누구든 행복할 자격이 있으니 살아가길 잘했단 생각이 들 때까지 같이 나아가자하는 오르도가 멋있었다.
오르도의 초상은 지금의 다정다감한 오르도와는 달랐다. 오르도는 그리며 살고 싶다고, 행복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. 그렇게 오르도는 움트기 시작했던 거 같다. 이 초상들은 그 사람 본연의 새싹을 보여주는 그림이지 않을까? 그래서 이야기를 들어야만 하고...
본인의 초상과 오르도의 초상을 마주하면서 나탄은 오르도처럼, 오르도와 함께 살고 싶다고 여긴다. 여리고 참 안타까운 사람이다. 오르도가 나탄보다 여덟살 정도 어린데도 약한 모습 보이고 오르도에게 의지하는 관계성이 좋다고 생각했다. 사실 나이는 중요하지 않았고 나탄은 아직 꽃 피우지 않았던 상태였을 뿐이다. 어떠한 말보다 숲을 태우는 행동으로 변화를 보여주는 나탄을 보면서 앞으로도 오르도가 양분같은 역할 해주며 잘 살아갈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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